정부가 지난 3월 30일 국무회의에서 2027년도 예산안 편성지침을 의결한 지 5개월 가까이 지났다. 현재 8월 말 정부안 확정을 앞두고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편성 규모는 800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정부는 사상 최초로 의무지출 10%, 재량지출 15% 감축 목표를 동시에 제시했다. 적극 재정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이 두 목표가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이다. 2026년 국방예산은 전년 대비 7.5% 증가한 65조 8,642억 원으로 확정됐다. 7년 만에 최대 증가폭이다. 복지 지출 역시 인구 고령화로 구조적 증가가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에서 의무지출을 10% 줄이겠다는 목표는 비현실적이다. 어느 항목을 어떻게 감축할 것인지 구체적 실행 계획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한 청사진은 미래를 저당 잡는 위험한 도박이 된다.
더 큰 문제는 국가채무 증가 속도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26년 51.6%에서 2027년 53.8%, 2028년 56.2%를 거쳐 2029년엔 58%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3년 만에 6.4%포인트가 늘어나는 셈이다. 한국의 총부채비율 54.4%는 G20 선진국 평균 118.9%보다 훨씬 낮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증가 속도가 문제다. 한번 늘어난 국가채무는 되돌리기 어렵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미래 세대에게 넘어간다.
정부는 「수요자 중심 재정 혁신」과 「적재적소·불요불급 원칙」을 내세웠다. 하지만 원칙만으론 부족하다. 어떤 사업을 폐지하고 어떤 사업에 집중할 것인지, 우선순위가 명확해야 한다. AI·녹색 전환, 5극 3특 지방 성장 엔진, 연구개발 등 핵심 분야 투자 확대를 명시했지만, 재원 조달 방안은 불분명하다. 지출 감축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세입 확충 방안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 한국의 조세부담률 19.0%는 OECD 평균 25.3%보다 6.3%포인트 낮다. 세입 기반 확대 없이 지출만 늘리면 재정 건전성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800조 원 예산은 국민 삶의 질을 좌우하는 청사진이다. 하지만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한 청사진은 미래를 저당 잡는 위험한 도박이 된다. 정부는 8월 말 예산안 확정 전에 중장기 재정 로드맵과 구체적 감축·확충 방안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적극 재정과 건전성 양립」이라는 구호가 공허한 말장난으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숫자와 일정이 담긴 실행 계획으로 국민을 설득할 것인지—남은 10여 일이 그 진정성을 가늠할 시험대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