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2일) 육·해·공군 사관학교 총동창회장단이 안규백 국방부 장관을 만나 사관학교 통폐합 재검토를 요청했다. 지난달 16일 국방부가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대전 자운대로 통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지 한 달도 채 안 돼 전임 참모총장 46명, 총동창회장단까지 나서 제동을 건 것이다. 그러나 국방부는 7일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며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 모습이다.
정부가 내세우는 명분은 명확하다. 학령인구 감소, 합동성 강화, 교육 효율화. 언뜻 합리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정작 이 정책을 주도하는 안규백 장관은 1983~1985년 육군 방위병으로 복무한 것이 군 경력의 전부인 민간인 출신이다. 64년 만에 첫 민간인 국방장관이라는 상징성은 있지만, 군 부대 경험이 거의 없는 지도자가 백년 역사의 사관학교 체제를 재편하는 데 필요한 현장 감각을 갖췄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백년 역사를 지닌 교육기관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단순한 효율 논리로 재단할 수는 없다.
더 큰 문제는 통합의 실질적 동력이 교육 혁신이 아니라 정치적 셈법이라는 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5일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육사가 쿠데타를 세 번이나 주도했는데 책임은 안 졌다'며 통합사관학교 출범이 육사 개혁이라고 밝혔다. 12.3 내란 주도 세력이 육사 출신이었던 만큼 육사 해체를 통해 과거와 단절하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특정 출신 집단의 일탈을 이유로 100년 넘게 이어진 교육기관의 정체성을 지우는 것이 과연 교육적 해법인가. 과거의 잘못된 역사는 단절해야 하지만, 그것이 물리적 통폐합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의 반발은 구체적이다. 전임 참모총장 46명은 6일 공동 입장문에서 '통합으로 예산이 절감되는 것이 아니라 천문학적 예산이 소요된다'며 '동일한 장소에서 함께 교육한다고 합동성이 발휘되는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특정 정부 정책에 대해 전직 참모총장들이 공동입장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현장을 아는 전문가들이 보기에 이번 통합 계획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방증한다. 국방부는 이들의 의견에 대해 '별도 입장은 없다'며 '다양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는 형식적 답변만 내놨다.
국방부는 오는 26일 공청회를 열고 10월쯤 세부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공청회가 형식적 절차로 흐르고, 이미 정해진 결론을 추인하는 자리가 될 우려가 크다. 정부가 진정 미래전 대비와 교육 혁신을 원한다면, 각 사관학교의 특성을 살린 교육과정 개편, 합동교육 강화, 우수 인재 유입 방안 마련이 물리적 통합보다 먼저다. 총동창회장단이 12일 장관에게 요청한 '현행 3군 사관학교 체제를 유지한 채 교육개혁을 추진하는 방안'도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
효율성은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백년 역사를 지닌 교육기관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단순한 효율 논리로 재단할 수는 없다. 군 경험이 제한적인 지도자가 전문가 의견을 외면한 채 정치적 명분만으로 밀어붙이는 정책이 과연 국방력 강화로 이어질지, 국방부는 속도보다 방향을 먼저 점검해야 한다.






